자,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시겠어요?
당신이 서울에서 '비비미'라는 이름의 맛있는 비빔밥 프랜차이즈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비빔밥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죠. 신선한 콩나물과 시금치, 따끈한 밥, 예쁘게 부친 계란 지단, 그리고 맛깔스럽게 볶은 고기까지, 정성껏 준비해야 할 재료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은 아주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각 매장이 특정 재료를 전문적으로 맡아 준비하고, 매일 새벽 6시가 되면 필요한 지점들로 착착 배송해주는 시스템이죠. 강남점은 시금치를, 홍대점은 계란 지단을, 그리고 신촌점은 다진 고기를 책임지는 식으로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완벽한 계획처럼 보였습니다.
예기치 못한 균열: 공급망의 현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부터 신촌점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밤새 만들어 놓은 고기가 전부 사라졌어요!"
이럴 수가. 핵심 재료인 '고기'가 사라지자, 모든 지점의 비빔밥 완성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날 하루, '비비미' 전체의 영업은 마비되었고 매출은 곤두박질쳤죠. 나중에 CCTV를 확인해보니, 허탈하게도 신촌점 사장님이 깜빡 잊고 고기 창고 문을 잠그지 않아 발생한 도난 사고였습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단 하나의 돌발 변수가 전체 시스템을 멈춰 세우는 일, 사업을 하다 보면 안타깝게도 종종 마주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경영에서는 이렇게 필요한 자원을 제때 받지 못해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을 두고 간단히 '공급망이 망가졌다'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공급해주어야 할 연결고리, 그 망(網) 어딘가가 끊어진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공급망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을 우리는 '공급망 변수'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 변수들이 너무 불확실하면, 우리는 앞날을 예측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너무나 어려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불확실한 공급망 변수'라는 안개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할까요?
오늘 저는,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사업가로서, 혹은 관리자로서, 어떻게 공급망에 현명하게 개입하여 흔들리지 않는 전략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조금은 특별한 관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다시 비비미 식당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우리 식당은 강남, 홍대, 신촌 세 지점이 각기 다른 재료를 만들어 서로에게 공급하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네트워크란 늘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지점은 갑자기 재료가 부족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하게 지점끼리 독자적인 거래를 시작하며 기존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죠. 더 나아가 가뭄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은 네트워크 전체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네트워크의 변화'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교란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발표된 「Robust Intervention in Networks」(2024년 12월 30일 버전, 정대영, 임동석, 신은철 저)라는 논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저 문제가 터지기를 기다렸다가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자가 직접 공급망 전략에 '개입'하여 불확실성이라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맞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이 논문은 의사결정자가 네트워크의 모든 정보를 다 알지 못하거나, 미래에 대한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어떻게 '최적의 개입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탐구합니다.
세상은 제로섬 게임?: DM과 'Nature'의 대립
흥미롭게도, 이 논문은 네트워크 개입 문제를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봅니다. 제로섬 게임이란, 참여자들의 이득과 손실의 총합이 항상 0이 되는 게임을 말합니다.
한쪽이 얻는 만큼 다른 한쪽은 반드시 잃게 되는 구조죠. 우리가 어릴 적 하던 가위바위보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내가 이기면 상대는 지고, 나의 +1점과 상대의 -1점을 합하면 늘 0이 되니까요. 이런 구조에서는 상대방이 곧 나의 이익을 빼앗는 존재로 여겨지기에, 각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최적의 수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논문 속 게임의 참여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네트워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의사결정자(Decision Maker, DM)', 즉 우리 자신과, 이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는 '적대적 자연(Nature)'입니다.
여기서 DM은 비비미 식당의 본사 대표처럼 네트워크에 자원을 배분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고 싶어 하는 주체입니다. 반면 'Nature'는 단순한 운이나 날씨 같은 무작위적 요소를 넘어섭니다. 이는 DM의 이익을 최대한 깎아내리려는, 마치 '전략적인 적수'와 같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앞서 발생했던 고기 도난 사고나, 협력해야 할 지점들이 갑자기 거래를 중단하는 등의 모든 불리한 상황이 바로 이 Nature의 '방해 공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우리가 어떤 배분 전략을 세우면, Nature는 그 전략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네트워크를 우리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로 비틀어 버릴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불운이나 방해가 닥쳐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강건한(Robust) 네트워크 개입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DM인 우리는 네트워크 상에서 '어디에 얼마나 자원을 배분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비비미 식당의 예로 들면, 강남점, 홍대점, 신촌점 중 어느 지점에 재료, 예산, 인력을 얼마만큼 투자할지 정하는 것,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공급망 차단, 도난 사고 등)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됩니다.
어떻게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
논문에서는 이를 위해 '배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각 지점별로 필요한 재료량과 실제 공급량 사이의 차이를 꾸준히 살펴 그 오류의 간극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하나의 배분 전략이 될 수 있겠죠. 다만, 기존의 배분 전략을 너무 급하게 바꾸는 것은 추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기에, 좋은 전략이라 할지라도 시간을 들여 서서히 변화를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입니다.
그럼 어떻게 그 '최적의 강건한 전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논문은 '로버스트 최적화(Robust Optimization)'라는 접근법을 제안합니다. 이는 "만약 네트워크의 불확실성, 즉 Nature의 방해가 가장 나쁜 형태로 나타난다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목표 달성 수준을 지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전략"을 찾는 방법입니다. 마치 우리가 집을 지을 때, "평균적인 날씨에 얼마나 아늑할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폭풍우가 몰아쳐도 이 집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줄까?"를 함께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방식은 단순히 평균적인 영향력이 큰 특정 지점(예: 강남점)에만 집중하는 대신, 그 지점과 관련된 불확실성(분산)이나 다른 지점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확실성(공분산)까지 고려하여, 위험을 분산시키는 안정적인 배분 방식을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특정 지점,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해 보이는 '강남점'에만 집중 투자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가장 영향력이 큰 영역에 자원을 몰아주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여겨지곤 했습니다. 게임을 할 때 본진에 가장 좋은 시설과 방어 체계를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죠.
불확실성의 무게를 고려하다
비비미 식당의 경우에도, 평소에는 강남점의 공급 파급력이 가장 크니, 그곳에 대부분의 자원을 투입하고 물류를 집중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논문이 강조하듯, 만약 그 강남점 운영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강남점에 모든 것을 몰아두었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도난, 화재, 인력 부족 등)로 강남점이 멈춰버린다면, 전체 지점이 동시에 마비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금융 시스템으로 비유하자면, 특정 은행에만 유동성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가, 그 은행이 예상치 못한 문제에 휘말리면서 전체 시스템이 위험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중요한 영역이라 할지라도 그곳의 불확실성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그것이 공급망 전체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IT 분야에서 중요한 데이터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만 저장하지 않고, 천재지변과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러 곳에 분산된 데이터베이스 센터, 즉 클라우드 저장소를 구축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강건함'을 추구하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불확실한 네트워크 환경 속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단순히 '평균적으로 가장 좋아 보이는 해법'이 아니라, '적대적인 Nature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펼쳐 보이더라도 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고 찾아내는 것입니다. 평균적인 영향력만 보고 내린 결정은, 예상치 못한 단 한 번의 사고로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DM인 우리는 분산과 공분산의 위험을 꼼꼼히 따져,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자원 공급을 유지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배분"을 설계해야 한다고 논문은 힘주어 말합니다.
네트워크는 살아있다: 확장과 새로운 불확실성
비비미 본사가 특정 지점의 평균적인 효율성에만 매달리지 않고, 여러 지점에 재료와 자원을 적절히 나누어 두거나, 위기 시 서로를 대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로버스트(견고한) 개입 전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강남점이든 홍대점이든 어느 한 곳이 갑자기 마비되더라도 나머지 지점들이 그 공백을 메워주며 전체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만약 우리 비비미 식당에 새로운 '건대점'이 문을 연다면 어떨까요? 새로운 매장의 등장은 기존 네트워크 구조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건대점이 홍대점과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신촌점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거래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재료 분담 및 보관 전략은 재설계가 필요해집니다.
새로운 노드가 추가될 때마다, DM인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갑자기 건대점에 수요가 몰려 다른 지점들의 재고가 바닥나면 어쩌지? 혹은 건대점 자체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체 공급망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논문은 네트워크가 확장될 때마다 로버스트 최적화 전략을 다시 세심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네트워크가 커지면 불확실성의 양상 또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없던 협력 경로가 생기거나, 새로운 지점이 예상 밖의 중심 노드가 될 수도, 혹은 반대로 잦은 문제를 일으키는 취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변화에도 유연하게 분배 전략을 조정하자!"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길을 찾는 지혜
결국 네트워크 개입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저 평균적으로 좋아 보이는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쳐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길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식당 체인이라면 한 지점의 실패가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 시스템이라면 특정 은행의 부실이 시스템 전체를 흔들지 않도록, 방역이라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필요한 곳에 자원이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적대적 자연(Nature)'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시험하든 네트워크가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DM인 우리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Nature는 늘 우리 주변에 있으며,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까지도 미리 따져보고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